믿음으로 행해지는 가짜들 #02

믿음으로 행해지는 가짜들 #02
(선교사인가? 선교지 마케터인가?)

‘선교사’라는 말처럼 모호한 말도 없다. 주님 나라를 위한 선교라면, 믿는자라면 너나 할 것 없이 누구나 다 ‘선교적’이어야 한다. 선교사라고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복음대로 산다고 한다면, 당연히 은혜의 복음은 ‘선교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선교사’라는 이름을 달고도 ‘선교’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행하는 자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누군가를 비판하려는 것도 아니고, 지금까지의 모든 선교사들을 싸잡아 평가절하 하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내가 만나보았던 ‘선교사’라는 이름을 달고, 어떤 일을 저질르고 있는지 그저 나누고 싶을 뿐이다.

물론 나의 글에 불편함을 느낄 수 있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절대 다수를 위한 글이 아니라, 우리 가온누리 교회 성도들을 위한 글일 뿐이다. 우리 성도들의 믿음이 온전한 믿음으로 성장하기를 원하는 마음에서, 또한 앞으로 이 세계 어디든 복음들고 나아갈 때에 속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기록해 두는 것임을 미리 알려두는 바이다.

선교사들의 에피소드를 듣다가 보면, 정말 ‘주님이 하셨다!’라는 고백밖에는 나올 것이 없다. 주님께서 값없이 은혜로 베풀어주신 그 선교 현장의 생생한 고백들은 일상을 살아가는 평신도들에게는 ‘선교사의 간증’만큼 박진감 넘치는 신앙의 고백을 접하기란 흔한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결론 부분이다. ‘주님이 일하셨고, 주님께서 행하셨고, 불가능 한 일을 이루셨습니다!’ 그런데 ‘이 선교지를 위하여 기도해 주세요.’ 사실 ‘기도해 달라’는 말은 선교지를 ‘후원’해 달라는 무언의 압박으로 들릴 때가 있다. 모든 것이 완벽하고, 주님께서 행하여 나가신다는 확신을 가졌다면, ‘기도’나 ‘후원’은 사실 강조할 필요가 전혀 없다.

만약 기도를 구한다면, 사도바울이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에게 구했던 그 중보면 충분하다.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엡 6:19)

내 입술이 먹고 사는 걱정의 기도로 가득차고, 한숨과 신세 한탄이 아니라, 내가 선 곳에서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입을 열어 증거하게 해달라고 중보부탁하면 된다. 선교사가 할 일은 복음이 필요한 곳에 전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사명이기 때문이다. 선교사뿐이겠는가? 목회자도 마찬가지다. 선교사나 목사나 전하는 것의 기본과 근본은 ‘복음’ 아니겠는가?

‘복음’이외의 것을 구한다면, 분명히 구별해내야 한다. 하나님이 돈 몇 푼에 일을 못하시는 분이신가? 하나님의 전지전능이 고작 몇이 기도하고, 안 하고에 따라서 이루어지고, 안 이루어지는가? 값없이 은혜로 복음을 주신 하나님이 고작 후원금 때문에 일을 못하신다? 선교사의 사역이 돈 몇 푼에 이루어지고, 안이루어진다는 식의 결론을 맺는다면, 그것은 가짜다. 지난 은혜의 추억은 사실일런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과거일 뿐, 은혜의 경험은 지금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선교사가 할 것은 ‘복음’증거지, ‘복음을 증거하기 위한 무언가’를 홍보하는 것이 아니다. 왕의 전령이 할 일은 ‘왕의 메시지’지를 정확히 전하면 되는 것이다. 전하기까지 걸어가던, 말을 타고 가던 상관이 없다. 왕이 명한대로 가서 전하기는 것으로 전령의 사명은 다하는 것이다. ‘가라고 하는 곳’으로 ‘정확히 가서’,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전령의 사명이자, 선교사의 사명이다. 전하라고 명하신 분이, 하물며 가는 여건을 마련해 놓으시지 않으셨겠는가? 왕의 이름으로 나아가는 전령이 앞에 무서운 것이 있겠는가? 왕의 이름,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면 충분한 것이다. 왕의 명을 전하기 위해서는 말 한 필도 필요하고, 가는 길에 숙소도 필요하고, 먹을 것도 필요하다라고 이야기 한다면, 왕의 명령에 순종하는 자의 반응은 결코 아니다. 왕의 명과 함께 즉각 순종이다.

성경에 나오는 모든 선지자들과 복음전하는 자들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지 않는가? 주님 명령하시면, 준비고 뭐고, 즉각 순종 뿐이다. 경외함으로 주님 앞에서 서 본자만이 그 즉각 순종의 이유를 안다. 은혜의 복음 앞에 서 본자만이 ‘세치 혀로 전할 것은 복음밖에 없다’는 것을 안다. 모든 것은 주님께서 행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복음전함을 중보하는 기도’ 부탁 외에는 다른 것을 이야기 한다면, 분명히 구별해 내야 한다.

왜냐 주님이 나를 주님의 거룩한 사역에 함께 참여시켜주신다면, 꼭 그 선교사의 만남을 전제하지 않아도, 주님이 직접 나를 다루어주시기 때문이다. 주님과의 관계에 어떤 중매도 필요없다. 성령님 한 분이시면 충분하다. 내가 몰랐던 선교지의 소식을 선교사를 통해서 접하게 되고, 마음이 동하여 후원하게 된다면, 그 후원은 오래가지 못한다. 특히나 그 특정 지역 선교사의 좋지 못한 소식을 접하면, 후원하고 싶은 마음이 씻은 듯이 사라진다. 만약 선교지에 후원을 하고 싶다면, 주변 선교사나, 설교하러 오는 선교사를 찾지 말고, 직접 찾아 나설 필요가 있다. 주님이 일하실 때는 ‘복음’ 하나면 충분하기에, 어떠한 혈연과 지연, 학연, 인맥도 필요 없다.

그런의미에서 특히 주의할 것은 선교사와 담임 목사 혹은 교회와의 관계이다. 늘 후원은 출신교회 선교사, 혹은 관계가 있는 선교사이기에 선교사들 사이에서도 교연(교회의 관계/기관후원), 성연(성도와의 관계/개인후원)아니면, 선교사로 살기 힘들다는 말을 버젓이 한다.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노릇이다. 이런 의식을 가지고 있는 선교를 만난다면, 그냥 걸러내야한다. 그리고 자꾸 사진 같은 것 찍어서 밑에 온 가족 이름뒤에 선교사라고 붙여 놓고, 개인 후원계좌를 열어 놓았다? 이 또한 그냥 걸러내라. 한낱 인간의 후원이라고 해봤자, 전지전능한 하늘 아버지의 능력보다 크겠는가? 이미 종이 한장에서도 그 믿음이 드러나는 것이다.

또한 어설프게 프레젠테이션이나 영상을 준비해서 설교 초반, 중반, 후반에 보여주는 자들을 주의해야 한다. 선교지는 믿는 자들이 나아가야할 곳이지, 구경하고 돈 몇푼 쥐어서 보내는 곳이 아니다. 선교지를 궁금하게 해서 선교지를 향한 소명을 품게 하는 선교사가 진짜 선교사다. 그는 동역자를 찾는 것이기 때문이다. 선교지에는 사실 복음 전할 사명자가 필요한 것이지, 돈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물론 물질이 필요하더라도, 들의 백합화도, 공중의 새도 먹이시는 하나님이 알아서 하실 것이다. 꼭 선교사의 영업을 통한 방법만을 사용하시지는 않는다.

관심도 없는 사람들에게 영업해서 후원받아 어떤 일을 진행하는 것과 큰 관심을 가지고, 기도하며 준비하며, 주의 일을 위하여 헌신하는 사람들과 함께 진행하는 것과 어떤 것이 더 성경적인지는 여러분들이 판단해 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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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행하지는 가짜들 #03
(성도인가? 양아치인가? / 상식에도 못미치는 믿음=망상적 자기 확신)

#믿음#선교#선교사#교회#한국교회#해외선교사#가짜선교사#가짜#호구#장사꾼#선교호객 #영업 #선교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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